"다급한 침수 현장에서 수 차례 전화를 했으면 가타부타 답을 해줘야 현장에서 대처할 거 아입니꺼"

지난 19일 수마가 지나간 20일 오전, 기자가 찾은 경남 진주시 사봉면 사곡리 방촌마을 일대. 마을 주민 A 씨는 "침수가 시작된 어제 진주시 관련 부서에 수 차례 침수 상황을 전하면서 복장이 터질 뻔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물이 차오르는 '물난리'가 났는데 정작 '머리엔 열불이 났다'고 당시의 긴박감을 역설적으로 전했다.

방촌마을 주민들이 왜 이렇게 분통을 터뜨렸지, 그 과정을 주민들에게 찬찬히 들어봤다. 방촌마을에는 48세대에 주민 80명이 살고 있다.

반성제1배수통문 모습. 방촌 들판에 물이 차면 빼내기 위한 시설이다.

반성제1배수통문 현황 안내도. 지방하천은 시도에서 총괄하기에 배수통문을 만든 주체(시행처)는 경남도다. 평소 관리는 기초단체인 진주시가 한다.

주민들에 따르면 지난 19일 오전부터 폭우가 퍼부으면서 마을 경로회관과 가옥 10가구, 공장 2곳이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거센 비가 지속되자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이 마을 앞 반성천(지방하천)에는 크고 작은 배수 펌프 3개가 설치돼 있다. 기자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배수 펌프는 마을과 들판의 물을 반성천으로 빼내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복수의 주민에 따르면, 이날 반성제1배수통문을 비롯해 사곡리 일대 모든 배수 펌프는 가동이 되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억수같이 쏟아지는 폭우에 반성천으로 흐르던 물이 배수통문을 통해 역류해 인근 도로에 이어 마을 저지대가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반성제1배수통문과 둑방길. 왼쪽은 반성천이고, 오른쪽은 물을 하천으로 빼내기 위해 먼저 물을 모으는 웅덩이 시설이다. 소류지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반성제1배수통문 옆의 웅덩이 모습을 다시 찍었다. 배수 펌프로 물을 퍼내기 위해 물을 모으는 곳이다.

먼저 이곳 배수 펌프 현황을 알아보자.

사곡리의 반성천 배수통문은 진주시 환경산림국 환경정책과 하천시설팀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침수 관련 업무는 같은 과 하천관리팀에서 한다.

작은 배수 장치. 진주시에서 관리한다.

반성천 등 지방하천은 경남도가 총괄하며, 실제는 진주시가 관리한다.

사곡리 반성천 3곳의 배수 펌프 위치(빨간 동그라미 표시)는 아래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형은 방촌마을 앞과 지도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위에서 소개한 배수통문 사진은 3곳 가운데 중간에 있는 것이다. 동그라미에 표시된 'ㄷ' 모양의 흰색은 물을 모으는 웅덩이 가장자리다. 작은 배수장치는 지도의 맨오른쪽에 있다.

반성천 사곡리 방촌마을 인근에 있는 3곳의 배수 펌프 위치도

마을 주민들은 이날 진주시의 대처에 왜 '열불'이 났는지를 기자에게 말했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위치 사진 중간 배수 펌프 근처)에 사는 A 씨는 19일 오후 2시쯤 들과 마을 간의 둑방 옆 도로 배수구에 물이 차 오르자 가까이에 있는 배수 펌프를 확인했다. 모터가 돌아가고 있지 않았다. 그는 오전까지 모터는 작동됐다고 했다.

이 사실을 먼저 배수 펌프를 관리하는 마을 이장에게 연락했다. 이어 진주시 환경정책과(A 씨는 하천과라고 함)에 배수 펌프 모터가 작동되지 않고 있다고 알렸다.

비가 세차게 이어지면서 물은 점점 차 올랐다.

2시간쯤 지나도 진주시의 전화 콜백이 없어 오후 4시 직전에 다시 전화를 했다. 직원은 "확인해 보겠다. 확인 후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두 번째 전화 후 물이 더 차 올라 차량 이동이 불가능한 상태가 됐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오후 5시 24분 앞서 전화한 환경정책과에 전화를 넣었다.

전화를 받은 이는 이전에 통화한 직원이 아닌 듯 "확인해 보겠다",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고 했다.

A 씨는 "집과 일터가 방촌마을에서 떨어져 있어 지대가 마을보다 낮다"며 "오후 7시쯤 물이 허리 위로 차 올라 집에 있는 물놀이 튜브 등 이용해 대피했다. 절박한 상황에서 모든 걸 우리 혼자 했다"며 감감무소식의 진주시를 비난했다.

비슷한 시각, 방촌마을 주민들도 함께 있던 사봉면사무소 직원과 119 소방 보트가 아닌 사설 보트를 타고 대피를 했다.

A 씨는 대피 후 오후 7시 23분 다시 "혹시나 해서 담당 부서에 전화를 했으나 똑같은 답만 들었다"고 했다.

이날 오후 A 씨가 진주시 담당과에 전화를 한 것은 모두 4번이다. 오후 2시부터였으니 5시간 정도가 흘렀다.

이 시간대에 상황이 급격히 악화됐더라면 사망 등 더 큰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A 씨는 "진주시 공무원은 왜 있는지 모르겠다"며 "피해 보상을 정부가 아닌 담당 직원들이 개인 사비로 해야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방촌마을 인근에서 건축 자재 공장을 운영하는 B 씨. 그는 "배수장(배수 펌프) 작동이 안 되고 배수장에 물이 역류해 공장과 집이 다 물에 잠겼다"며 하소연을 했다.

B 씨는 A 씨와 달리 진주시가 아닌 지방하천을 총괄하는 경남도 하천 담당 부서에 전화신고를 했다고 헀다. 오후 3시쯤이었다.

여기에서도 콜백이 없어 오후 3시 32분쯤 다시 전화를 넣었다.

전화를 받은 직원은 "하천을 담당하는 과는 수자원과"라며 "담당자에게 연락하라고 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는 행정의 도움을 포기했다.

주민들의 이 같은 주장에 진주시 환경정책과 관계자는 "19일 (폭우) 재난으로 부서 인원의 반이 근무를 했지만 사고 신고가 많아 다른 현장을 대처하다 보니 대응이 늦은 것 같다"며 "사봉면 사곡리 사고 접수는 사봉면사무소에 전달이 됐으며 면에서는 도로가 침수돼 들어가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A 씨는 "도로가 침수돼 급하게 이반성면에서 양수기를 빌려오고 문산읍에 있는 소방서에서 온 소방차의 지원 받아 배수 작업을 했다"고 했다. 이어 "오후 5시쯤 배수기 수리기사가 와서 배수기를 수리했으나 물이 계속 차올라 소방 대원과 사설 구조원들의 도움으로 대피를 했다"고 말했다.

소방 관계자는 "다른 곳에서 지원하고 사봉면 사곡리 침수 지역에 오후 5시 정도에 도착했으나 방촌마을로 진입하는 도로가 침수돼 그 지점에서 양수 작업을 했다"며 "이후 마을쪽으로 가는 다른 길을 찾아 이동해 오후 7시쯤 해병대·특전사 전우회의 지원으로 보트로 주민 8명을 대피시켰다"고 했다.

하지만 진주시 환경정책과에선 이 과정에서 긴급 전화를 꼭 해야 했던 주민에게 전혀 연락을 하지 않았다. 경남도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전개된 과정을 살펴보면, 사봉면사무소 직원들이 마을에 와서 침수 대응책을 논의했다.

다만 사봉면사무소 관계자는 방촌마을에 몇 시에 갔는지에 대한 기자의 전화 질문엔 답을 하지 않았다. 이장도 몇 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얼버무렸다.

사봉면사무소는 진주시에서 A 씨의 전화를 받고 면사무소로 통보를 했는지도 답하지 않았다.

따라서 마을 이장이 사봉면사무소에 전화해서 온 것인지, A 씨의 긴급 전화를 받은 진주시 환경정책에서 면사무소에 연락을 한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문제는 정작 긴급 전화를 넣었던 주민들은 5시간을 어떤 콜백도 받을 수 없어 불안에 떨었고, 대책 마련을 할 수 없어 답답했다는 것이다. 전화를 한 두 주민은 방촌마을과 떨어진 지대가 낮은 도로가에 집이 있거나 혼자 일을 하고 있었다.

침수 피해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현장과 소통이다. 침수가 되면서 집과 공장 피해는 물론 인명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기관간의 대응책 교류도 중요하지만 신고자에게 통보를 하는 것도 똑 같이 중요하다.

따져야 할 것은 또 있다.

진주시 직원이 주민의 침수 전화를 받고서 민원인에게는 알리지 않았지만 사봉면사무소 직원에게 "민원인에게 전하라"고 했는지의 여부와 사봉면사무소 직원이 상황을 전달 받았는데도 빠뜨리고 민원인에게 전하지 않았는지 여부다.

무조건 민원 전화를 한 주민에게 진행 상황을 전했어야 했다.

■ 두 주민의 민원 전화 타임트리

▶A 씨의 진주시 침수 민원(도로 침수, 양수기 미작동)

- 1차 전화/ 오후 2시 10분(이하 진주시 환경정책과)

- 2차 전화/ 오후 3시 56분

- 3차 전화/ 오후 5시 24분

- 4차 전화/ 오후 7시 23분

▶ B 씨의 경남도 침수 민원(방촌마을 이장에게 도로 침수 연락 직후 전화)

- 1차 전화/ 오후 3시쯤(이하 경남도)

- 2차 전화/ 오후 3시 32분

▶ 진주소방서 문산119안전센터 소방차 도착(먼저 침수 신고 지역 작업 후 도착)

- 오후 5시쯤/ 사봉면 사곡리 도착. 도로 침수로 방촌마을 진입 힘들어 인근에서 양수 작업

- 오후 7시쯤/ 방촌마을로 가는 다른 길을 찾아 이동해 해병대·특전사 회원 대원들과 주민 대피

■ 다음은 침수 피해 현장 모습이다.

방촌마을 경로회관이다. 건물에 침수된 물 자국이 마르지 않고 남아 있다. 물이 차오른 높이가 입구 왼쪽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 정도다.

물이 담았다가 빠진 방촌마을 경로회관 내부 모습

완전히 침수됐던 차량. 지붕 위에 침수 때 떠 다니던 PET 물병이 올려져 있다. 이곳을 지나던 외지인 차량으로 통제가 없어 들어왔다가 침수로 차가 고장 나 움직일 수 없었다.

도로의 가로수에 흙탕물 얼룩이 남아 있다. 물이 담았을 당시의 침수 깊이를 짐작하게 한다.

침수된 참깨 밭 모습. 참깨 잎이 흙탕물로 누렇게 보인다. 이 정도이면 올해 참깨 수확은 힘들다.

저지대인 사봉면 사곡리 도로 쪽의 주택과 차량이 완전히 물에 잠겼다가 물이 빠진 뒤의 모습. 당시 마을의 급박했던 침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한 곳에 있던 항아리가 침수 때 둥둥 떠다녔는지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다. 항아리 안에 어떤 음식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침수됐던 주택의 벽에 성인 키 높이의 침수 흔적이 남아 있다.

집 내부도 완전히 침수돼 세간살이가 어지러이 널려 있다.

건축자재 공장 사무실의 침수 모습. 가득 찼던 물은 빠졌지만 누런 흙탕물은 빠지지 않고 바닥에 남아 있다.

건축자재 공장 내부의 침수 흔적. 누런 흙탕물이 바닥에 그대로 남아 있다.

기계 부속품 가공 공장의 침수된 전기설비 장비 모습. 모두 교체해야 한다고 했다.

■ 취재 후기

이 기사는 당시 공무원들의 책임을 묻자고 쓴 것이 아니다.

요즘처럼 기상 이변에 대처를 잘 하면 좋겠지만, 순식간에 하늘에서 투하되는 물폭탄에 속수무책일 수 있다. 역대급 폭우에 수 없이 걸려오는 전화에 정신없이 바빴을 수도 있고, 자주 접하는 상황이 아니어서 경황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방촌마을 상황을 취재하면서 시쳇말로 "이건 아니다"란 생각이 밀려들었다. 당시 침수 현장은 경각을 다투고 있었다.

4번의 신고 전화를 5시간 동안 했는데 간단한 콜백 전화 한번을 해주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었다. 경남도 하천 담당 부서의 두 번 전화도 마찬가지다.

콜백을 줘야 상황이 급박한 주민들로선 물이 차오르는 현장에서 지원을 기다려야 하는지, 곧바로 대피를 해야 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말이다.

군대를 가 본 독자들은 알지만 군대에선 '보고'를 잘해야 한다. 군부대 내 어딜 가나 '보고 철저' 문구가 벽에 붙어 있다. 보고가 없이는 전략 전술을 짤 수 없다.

다행히 방촌마을에선 인명 피해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진주시의 담당 부서는 각성해야 한다. 민원인 입장에서 보면 한 번도 콜백을 받지 못했으니 4번이나 면피성 전화 응대만 한 것이다.

전화를 받은 직원도 달랐다.

진주시는 재난 발생시 재난본부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주민 신고에 신속히 대응한다는 것이고, 홍보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전화 발·수신은 재난 대응 전략에서 가장 기본이다.

여기서 혼선이 생기면 그 다음 현장 대응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다음부터는 신고 전화는 한 곳으로 통일시키고, 직원이 현장에 나가 모자란다면 아르바이트라도 써야 한다.

또 지적할 게 있다.

진주시 직원에 따르면 19일 절반 인원만 나와 근무했다고 했다. 기자와 통화한 직원도 그날 근무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날이 어떤 날인가? 인근 산청엔 기록적인 폭우가 내려 물난리를 겪고 있었다. 사봉면은 물론 산청 인근 명석면, 대곡면에도 피해가 속출했다.

진주시장과 간부진이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다.

이번 방촌마을 물난리는 민방위훈련 등 재난 관련 훈련을 왜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 지를 일깨운 사례다.

피해 사후 폭우 침수가 '인재'인가 '자연재해'인가를 갖고 왈가왈부 하기에 앞서, 적시에 대처를 하면 피해를 더 크게 줄일 수 있다.

진주시 환경정책과와 사봉면사무소, 경남도 모두가 이번 방촌마을 사례를 복기해 볼 이유다.

경험에서 다져지고, 실패에서 배운다고 했다.

이번 방촌마을 침수 과정에서의 지자체 대응은 충분히 반면교사로 삼을만 한 사례다. 재난 대응 매뉴얼은 있었지만 모세혈관과 같은 디테일이 부족했다.

앞서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형 폭우 피해 두 사례를 소개하며 이 기사의 끝을 맺는다. 둘 다 지자체의 아주 자그마한 안일에서 초래된 대형 사고 사례다.

#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치수(14명 사망)

딱 2년 전인 지난 2023년 7월, 청주시 미호강에 홍수경보가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300~400m 거리인 궁평2지하차도에 교통통제가 이뤄지지 않았다. 지하차도 안에는 차량 17대가 고립돼 14명이 숨지는 폭우 수몰 참사로 기록됐다.

미호강이 범람하려고 하자 금강홍수통제소 등 몇 곳에서 흥덕구, 충북도에 지하차도 차량 통제를 요청했지만 근무자의 안일한 대처로 엄청난 인명 피해를 냈다. 경찰도 마찬가지였다.

지하차도 침수 전 2~4시간 동안 두 번 이상의 차량 통제 기회가 있었음에도 하지 않았다. 작은 근무 수칙을 지키지 않아 터진 너무도 참혹한 사고였다.

# 경기 오산시 가장동 고가도로 옹벽 붕괴(옹벽 토사에 차량 깔려 1명 사망)

지난 16일 오후 7시 4분 폭우로 경기 오산시 가장동 고가도로의 옹벽이 무너져 내렸다. 흔치 않은 사고 사례다.

차량 한 대가 무너져 내린 옹벽 흙더미에 파묻혀 안타깝게도 40대 운전자가 숨졌다. 바로 뒤를 따르던 다른 차량은 흙더미가 앞 범퍼에만 쏟아져 운전자(50대)는 천운(天運)으로 살았다.

이 사고도 사전에 한 주민이 사고 전날 동영상 등을 통해 붕괴 우려를 상세히 적시해 신고했으나 오산시는 고가도로만 통제하고 아래 도로는 통제하지 않았다.

또한 고가도로가 무너지면 토사 등이 아래 도로를 덮친다는 기본적인 것을 망각하고 위 도로만 통제했다. 생각없이 근무를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