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고학회 등 역사·고고학 분야 48개 학회가 17일 "이재명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사이비역사’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12일 이 대통령이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에서 ‘환빠’와 ‘환단고기’를 언급한 것을 계기로 사이비역사가 정치·사회적 이슈로 부상했다”며 “명백한 위서인 환단고기를 바탕으로 한 사이비 역사는 부정선거론 만큼이나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명확하게 선을 긋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2일 교육부 등 업무보고 자리에서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 "역사교육과 관련해 무슨 '환빠 논쟁' 있지 않으냐"고 묻자 무슨 뜻인지 의아해 하고 있다.
이들은 “사이비역사의 뿌리는 일본 제국주의의 대아시아주의(대동아공영권)와 맞닿아 있다”며 “일제의 대아시아주의를 모방해 ‘한민족의 위대한 고대사’를 주창하며 싹텄다”고 했다.
또 “환단고기는 이 과정에서 탄생한 위서(僞書)”라고 했다.
환단고기는 고대 한민족이 한반도를 넘어 유라시아 대륙 대부분을 지배했다는 주장을 담았지만 주류 역사학계는 이를 위서로 판단하고 있다.
이 책은 고려 말~조선 전기 저술된 여러 책을 수합해 1911년 간행됐다고 하지만 1979년 이유립이 간행한 위서라는 것이 정설이다.
'환단고기'의 실제 창작자로 알려져 있는 이유립(1907~1986년)
이들은 “1911년 간행본은 확인된 바 없으며, 1922년 출토된 ‘천남생묘지명’의 내용을 비롯해 ‘세계만방’, ‘원시국가’, ‘남녀평권(男女平權)’ 등 19세기 말 이후의 근현대 용어가 이 책엔 많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이어 “역사학계와 사이비역사 사이에는 어떠한 학문적 논쟁도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학계를 향한 사이비역사의 일방적 비방과 터무니없는 주장이 존재할 뿐”이라며 “대통령실은 ‘환빠’나 환단고기와 관련한 대통령의 애매모호한 표현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요구했다.
또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는 사이비역사에 우호적인 정치인이 일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이비역사는 이들과 결탁해 국책기관의 연구사업과 지방자치단체의 편찬사업을 방해했다”며 “정치권은 역사를 정치 도구화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말고, 우리 역사를 깊이 성찰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이를 해결할 중장기 정책 대안을 모색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들은 ▲이재명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사이비역사’의 위험성을 직시하라 ▲이재명 정부는 ‘사이비역사’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고 어떠한 지원도 하지 말라 ▲여야 정치권은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사이비역사’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하라 ▲이재명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역사 정책 수립·추진에서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라고 촉구했다.
역사학계와 고고학계는 앞서 5월과 7월에도 각각 민주당과 국정기획위원회를 향해 사이비역사를 비판하는 의견서를 냈고, 10월 전국역사학대회에서도 관련 성명서를 발표했었다.
대통령실은 논란이 커지자 이날 공지를 통해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 과정에서 있었던 대통령의 환단고기 발언은 이 주장에 동의하거나 이에 대한 연구나 검토를 지시한 게 아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