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반구천 일대에 남겨진 선사시대의 걸작 '반구천 암각화'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암각화는 바위나 동굴 벽면 등에 새기거나 그린 그림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12일 오전(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47차 회의에서 한국이 신청한 '반구천 암각화(Petroglyphs along the Bangucheon Stream)'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반구천 암각화는 국보인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를 포함하는 단일 유산이다. 명승지로 지정된 반구천 일대 약 3㎞ 구간이다.

12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최종 등재된 울산 울주군 대곡리 반구천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 모습. 선사시대 삶을 생생히 보여주는 그림 312점이 빼곡히 그려져 있다. 국가유산청

세계유산위는 "탁월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그려진 사실적인 그림과 독특한 반구천 암각화 구도는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의 예술성을 보여주고, 다양한 고래와 고래잡이의 주요 단계를 담은 희소한 주제를 선사인들의 창의성으로 풀어낸 걸작"이라고 평가했다.

또 "선사시대부터 약 6000년에 걸쳐 지속된 암각화의 전통을 증명하는 독보적인 증거이면서 한반도 동남부 연안 지역 사람들의 문화 발전을 집약해 보여준다"고 했다.

지난 1971년 발견된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울산 태화강 상류의 지류 하천인 반구천 절벽에 있으며 흔히 '반구대 암각화'로 불린다.

주 암면 기준으로 높이 약 4.5m, 너비 8m의 바위 면에 바다 및 육지 동물, 사람의 사냥 그림, 도구, 기하학적 무늬 등이 빼곡히 새겨져 있어 '한국 미술사의 기원'으로 불린다.

울산시 반구천암각화세계유산추진단이 3차원(3D) 스캔 도면, 실측 자료를 분석해 지난 2023년 펴낸 도면 자료집에 따르면 모두 312점의 그림이 확인됐다.

수면 위로 솟구치는 고래(가장 오래된 고래사냥 그림)와 거북·물개 등 바다 동물은 물론 호랑이, 멧돼지, 소, 토끼 등 육지 동물들이 바위 위에 빼곡히 그려졌다.

특히 암각화에 묘사된 고래만 해도 50마리 이상으로 어미 고래와 새끼 고래, 작살 맞은 고래, 잠수하는 고래를 생생히 표현했다. 관련해 작살·그물·창을 든 사냥꾼과 춤추는 주술사도 그려져 있어 선사시대의 생활과 문화를 알려준다.

울산 울주군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모습. 신석기시대 기하학적 문양부터 신라시대 글, 그림까지 모두 625점이 새겨졌다. 국가유산청

울산 울주군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국가유산청 제공

천전리 암각화는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서 약 2㎞ 떨어져 있다. 천전리 암각화는 대곡리 암각화에 앞서 1970년 알려졌다.

높이 약 2.7m, 너비 10m 바위 면을 따라 신석기시대의 동심원(원형)과 겹마름모 같은 기하학적 문양과 청동기를 거쳐 신라시대의 글, 그림 등 625점이 새겨져 있다.

신라시대의 글, 그림은 법흥왕(재위 514~540년) 시기에 남긴 것으로 추정돼 6세기 신라의 사회상 연구에 중요 자료로 평가받는다.

이번 등재는 한국이 보유한 17번째 세계유산(문화유산 15건, 자연유산 2건)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유산이라는데 의미가 크다.

정부와 울산시 등은 반구천 암각화가 지난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이름을 올린 이후 세계유산 지정을 위해 지난 15년간 치밀한 조사와 준비를 했다.

세계유산센터와 유네스코 자문·심사 기구인 이코모스(ICOMOS)가 엄격한 심사와 현장 실사 등을 했고, 올해 5월 '등재 권고' 평가를 받았다.

12일 오전(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47차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반구천의 암각화'가 등재 확정된 순간, 한국 측 관계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고 있다. 국가유산청

12일 오전(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47차 세계유산위원회 회의 현장. 국가유산청

하지만 향후 관리와 보존 숙제는 남았다.

반구천 암각화는 지난 1965년 건설된 사연댐으로 인해 1년에 2~3개월 물에 잠기면서 훼손이 우려돼 왔다.

사연댐이 반구대 지점보다 하류에 있어 수위가 53m를 넘으면 암각화가 물에 잠긴다. 최근 10년 동안에도 연평균 40여 일 물에 잠겨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세계유산 등재 준비 과정에서도 암각화 훼손을 막기 위해 댐 수위 조절, 임시 제방 설치, 임시 물막이 설치 등 여러 안이 나왔으나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이에 국가유산청은 지난해 4월 사연댐에 수문을 만들어 암각화가 잠기지 않게 하는 사업 계획을 고시해 설계 용역을 발주했다. 수문이 오는 2030년 완공되면 잠기지 않는다.

세계유산위도 이날 등재 결정을 하면서 ▲세계유산센터에 사연댐 공사 진척 상황 보고 ▲반구천세계암각화센터의 효과적 운영 보장 ▲관리 체계에서 지역 공동체와 주민들의 역할 공식화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요 개발계획을 세계유산센터에 알릴 것을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