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세관 직원의 마약 연루'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동부지검 검경 합동수사단이 9일 백해룡 경정(전 서울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의 '마약 수사 외부기관 압력' 주장이 근거없다는 중간 수사 결과를 내놓으면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이 한 달 전 말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1월 16일 페이스북에 백 경정을 두둔한 이재명 대통령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백 경정은 지난 10월 15일 이 대통령 지시로 동부지검 검경 합동수사단(합수단)에 합류했고, 동부지검은 백 경정에 수사 전결권을 부여했다.
한 대표는 당시 글에서 "약 먹어야 할 사람에게 칼을 쥐어준 건 이재명 대통령"이라며 "백해룡 쇼의 결과가 나오면 캐스팅 겸 감독인 이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합수단에 파견된 백 경정이 이틀 전인 11월 14일 자체 보도자료를 내고 합수단을 향해 수사 왜곡 의혹을 제기한데 따른 발언 성격으로 여겨졌다.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가 지난 3일 계엄 선포 1년을 맞아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여의도 행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유튜브 언더73스튜디오
당시 합동합수단 내의 팀장격인 백 경정이 합수단 차원이 아닌 개인 차원의 보도자료를 낸 것은 다소 이례적이었다는 반응이 나왔다.
백 경정은 이날 A4 용지 12장 분량의 보도자료에서 "합수단이 수감 중인 말레이시아 운반책들을 불러내 진술을 번복시키고 있다"고 주장하며 합수단 전체를 수사 대상으로 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백 경정은 또 임은정 동부지검장이 '셀프 수사' 우려가 있다며 백 경정을 수사 주체에서 제외한 '마약 수사 외압 의혹'도 수사하겠다고 했다.
백 경정은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으로 재직하던 2023년 말레이시아인 필로폰 밀수 사건을 맡아 인천세관 공무원이 연루됐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백 경정은 이를 확대 수사하려 했으나 당시 대통령실·검찰·경찰·국정원 등이 사건을 무마하려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임 지검장은 백 경정이 경찰·관세청 간부들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한 만큼 백 경정이 같은 사안을 직접 수사하는 것은 이해 충돌 여지가 있다고 판단해 수사 주체에서 배제해 왔다.
동부지검은 백 경정의 보도자료 배포에 "동부지검과 협의된 공보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백 경정이 주장하는 수사 범위에 대해서도 "기존 입장과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한 전 대표는 다음 날인 11월 17일에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망상에 빠진 사람에게 칼을 주면서 묻지마 칼부림을 부추기는 것"이라며 백 경정에 수사 전결권을 쥐어 준 임은정 동부지검장도 비판했다.
한편 임 지검장은 중간 수사 결과가 발표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백 경정에게 '느낌·추측과 사실을 구분해서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험하다'라고 충고했었다"며 "백 경정이 실수와 잘못을 더는 범하지 않도록 (사건) 기록을 꼼꼼히 살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동부지검에 부임해 관련 기록을 검토하고 당황했다. 의혹의 증거가 마약 밀수범들의 진술이 전부였고 (그 진술도) 경찰 조사 중 이미 오락가락했다"고 썼다.
이어 "마약 밀수범들의 거짓말에 속아 경찰 수사 대상이 마약 밀수 조직에서 세관 직원들로 전환됐다"며 "세관 직원 개인은 물론 국가 차원에서 여러모로 피해가 크다”고 했다.
합수단은 이날 발표한 중간 수사 결과에서 "마약 밀수에 세관이 연루됐다는 의혹은 결국 사실무근이었다"고 말했다.
합수단의 중간 수사 결과에 따르면, 경찰 수사 초기인 2023년 9월 인천공항 현장 검증 당시 말레이시아인 운반책 한 명이 공범에게 여러 차례 허위 진술을 유도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백 경정이 마약 사건을 수사할 때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조지호 경찰청장(당시 서울경찰청장)과 조병노 전 서울청 생활안전부장, 김찬수 전 영등포서장 등 경찰 간부 8명도 무혐의 처분했다.
백 경정은 합수단의 중간 수사 결과 발표 직후 인천공항세관·김해세관·서울본부세관과 대검찰청·서울중앙지검·인천지검 등 6곳을 대상으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
백 경정은 영장이 반려될 경우 공개수사를 검토하겠다고도 했다.
또 백 경정은 임 지검장을 겨냥해 “검찰 게이트와 한편”이라며 “합수단도 수사 대상이 될 것”이라고 했다.
임 지검장과 백 경정은 검찰·경찰 조직 수뇌부 등 ‘주류’를 비판하고 이들과 공개적으로 충돌하면서 이름을 알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작년 12월 한 시민단체가 백 경정에게 상을 주는 행사에 임 지검장이 “나도 과거에 이 상을 받았다”며 참석하며 두 사람은 처음 만났다.
임 지검장은 지난 7월 동부지검에 부임한 뒤 백 경정을 검찰청사로 초대해 합수단과의 면담도 주선했다. 서로 “내부 고발자들의 애환과 의심을 잘 알고 있다” “눈빛만 봐도 위로가 된다”고 했었다.
합수단은 지난 6월부터 가동돼 온 검경 합동수사팀과, 지난 10월 중순 합수단에 합류한 백 경정 주도 별도 수사팀으로 운영돼 왔다.
합수단이 이날 발표한 중간 수사 결과는 윤국권 검사가 이끄는 검경 합동수사팀 조사 결과다.